본문 바로가기

잡담

취향에 잡아먹힌 오타쿠의 최후

 

이 글은 블로거 Decoy 님의 글 '취향이 인격을 지배할 때'를 참고했으니 같이 읽어주면 좋겠다.

 

취향이 인격을 지배할 때

[.... 당신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그를 해소할 적당한 취미없이 오랜 세월을 살아왔어. 자극적인 매체...

blog.naver.com



0. 오타쿠/오타쿠 취미란?

이 글에서는 원나블과 지브리 애니 정도만 아는 사람을 일반인, VOD 서비스를 이용하며 원펀맨, 하이큐 등 인기 만화를 탐독하는 사람을 라이트 덕, 본인만의 인생작이 있으며 불법 번역(자막, 식질, 텍본)을 이용할 정도로 일본 서브컬처에 빠져 있는 사람을 오타쿠로 분류한다.

 


1. 오타쿠로 사는 것의 단점은?

먼저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의 소재가 빈곤해진다는 문제가 있다.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이 유 퀴즈, SNL, 비긴어게인, 엄마는 아이돌, 로스트아크 등의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울 때 대화에 끼기 어려울 수 있다.

다음으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문제인데, 그 원인으로 오타쿠 문화의 특수성과 인터넷 커뮤니티의 폐쇄성을 들 수 있다. 우선 오타쿠 문화의 발상지가 일본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혹자는 누구보다 일본의 업계 사정에 관심이 많은 오타쿠를 우물 안 개구리로 볼 수는 없다고 지적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옆동네 소식에 정신이 팔려 더 급하고 중요한 국내 소식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또 오타쿠들이 많이 이용하는 디시인사이드, 루리웹, 더쿠 등의 인터넷 커뮤니티는 20대 초 ~ 30대 중반이 많기 때문에 여론과 동떨어진 주장이 정설로 통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네이버 블로그, 카페도 마찬가지이다. 차라리 서브컬처 팬덤의 규모가 크거나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끼리 넓고 얕게 교류하면 모르겠지만, 애석하게도 둘 다 아니다.

아직까지 오타쿠 문화는 전세계적으로 일부 젊은이들이 즐기는 서브컬처에 불과하며, 여기에 인터넷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이 더해져 네이버의 블로그와 카페, 루리웹, 디시 마이너 갤러리 등의 커뮤는 완전히 고여버렸다. 결국 개인적으로 언론 보도를 챙겨보거나 집 밖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지 않는 이상, 한국의 오타쿠는 세상 물정에 둔감해지기 쉽다.



20대가 점령한 디시인사이드, 루리웹, 트위터



그리고 취향과 관심사가 협소해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인데, 애니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인터넷의 오타쿠 커뮤니티에서는 국산, 중국산 애니에 대한 언급이 전무하며, 지브리 애니와 같은 대중적인 극장판 애니에 대한 이야기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현실에서 '애니를 좋아한다'라고 말하는 이들은 대부분 미야자키 하야오, 신카이 마코토, 호소다 마모루 중 한 명의 팬이라는 사실이다. 똑같이 애니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들은 당신이 띵작으로 꼽는 애니를 들어본 적도 없을 것이며, 짱구, 도라에몽, 코난, 귀멸 같은 국민 애니가 아닌 이상 TVA는 아예 모른다고 봐야 한다.



일반인이 좋아하는 애니는 따로 있다

 

대학교 일본 문화 수업의 발표 주제



만화책이나 라이트노벨의 경우도 그렇다. 일본 만화만 해도 원펀맨, 헌터X헌터, 히로아카처럼 남녀 모두에게 어필하는 작품이 있고, 소설에는 무라카미 하루키나 히가시노 게이고처럼 믿고 보는 거장들의 작품이 있다. 또 한국의 웹소설, 웹툰에도 판타지의 나혼렙과 전독시, 로판의 재혼 황후 등 굵직한 타이틀이 널려 있다. 이렇게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데도 '일본 만화가 최고지' '라이트 노벨이 아니면 관심 없어'라는 식으로 오타쿠 문화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2. 오타쿠로 사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뭘까?

세상에는 다양한 취향과 취미가 있다. 하지만 유독 오타쿠의 취향은 유치하다거나, 상업적이라거나, 비도덕적이라는 비판을 받곤 하며, '씹덕'이라는 말도 그런 맥락에서 오타쿠에게 붙여진 멸칭이다. 그런데 오타쿠가 매사에 자신의 취향을 밀어붙인 끝에 씹덕이라고 욕을 먹는 것보다 더 나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면 어떨까? 이 글을 읽다 보면 당신도 내가 걱정하는 바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배우 연정훈과 최민용, 그리고 가수 김동완. 이 세 연예인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별난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연정훈은 카레이싱, 최민용은 운전면허 취득, 김동완은 양봉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세 명은 '취향에 잡아먹힌' 사람들과는 달리 직업과 취미의 구분이 명확하며, 당당하게 자신을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 소개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취향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럼 취향에 잡아먹힌 사람들은 왜 그럴 수 없을까? 그건 그들의 취향이 별나서도, 그 취미에 너무 깊게 빠져 직업을 소홀히 해서도, 덕업일치를 이뤄서도 아니다. 사람이 취향을 떠나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없게 되는 진짜 이유는, 인격이 취향에 지배당하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결국 로리 캐릭터에 흥분을 느끼거나 오네쇼타에 열광하는 것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다. 통상 어떤 사람의 취향은 그를 이루는 수많은 요소들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취향 그 자체보다는 그 취향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주목해야 하며, 오타쿠로 사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오타쿠가 아닌 자신'을 떠올릴 수 없는 지경까지 자신을 몰아가는 일이다. 취향이나 취미는 라면을 얼큰하게 만드는 스프처럼 인생을 살맛 나게 하는 조미료지, 인생의 주재료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