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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정석과 클리셰 - 진부한 것은 무조건 나쁜 것인가?

이 글은 정석과 파격에 대한 Decoy 님의 글이 없었다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아래 글을 먼저 읽어보면 좋겠다.

정석의 매력 증명 - 변경의 팔라딘

우리는 흔히 진부하거나 틀에 박힌 생각, 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툭하면 우려먹는 패턴 등을 클리셰라고 부른다. 그런데 클리셰란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일까? 우선 클리셰라는 단어에 깃든 부정적인 뉘앙스를 떨쳐내기 위해 비슷한 의미를 가진 단어를 나열해보자. 정석(定石), 관행, 패턴, 틀, 스테레오타입(streotype) 등이 있을 것이다. 클리세만큼은 아니더라도, 이 단어들 역시 종종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과연 진부한 것이 그렇게 나쁜 걸까?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1. 참신하고 새로운 것은 항상 바람직할까? 반대로 진부하고 틀에 박힌 것은 무조건 피해야 할까?

2. 창작에서 기존의 관행을 따르거나 다른 이들의 작품을 모방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까? 그럼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려면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할까?

먼저 첫 번째 질문, 즉 독창적인 것은 좋은 것이고 뻔한 것은 나쁜 것인지 아래 그림을 보면서 생각해보자.


같은 그림에서 색만 다르게 칠했을 뿐인데, 오른쪽 그림이 왼쪽 그림보다 창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은 새로운 발상을 얻는 좋은 방법이지만, 이러한 '클리셰 비틀기'가 창작 행위로 인정받으려면 표현에 어떤 의도가 반영되어야 한다. 아래 그림이 좋은 예시다.


뭉크의 <절규>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모두 하늘을 독특한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절규>의 해질녁 하늘과 <별이 빛나는 밤>의 밤하늘이 독창적인 예술적 표현으로 인정받는다면, 그것은 실제 풍경을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려내서가 아니라 그 묘사에 자신만의, 이 작품만의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두 번째 질문, 클리셰를 비틀려면 클리셰를 부정해야 할까? 다시 말해 독창적인 무언가를 만들려면 기존의 관행을 부정하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야 할까? 천재 예술가로 알려진 피카소의 예를 들어보자.


왼쪽은 그가 15살 때 그린 <첫 성찬식>이고, 오른쪽은 좀 더 우리에게 익숙한 화풍의 <우는 여인>이다. 큐비즘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피카소조차 처음부터 파격적인 작품을 만들지는 않았다.

코페르니쿠스도 그렇다. 코페르니쿠스는 천동설에 반기를 들고 지동설을 주장한 사람으로 유명하지만, 그는 사실 기존의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을 완전히 부정한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당대의 가장 우수한 천문학자인 동시에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의 대가였다. 책 <과학은 이것을 상상력이라고 한다>의 저자 이상욱 교수는 이를 '수렴적 상상력'과 '발산적 상상력'이란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쉽게 말해서 독창적인 이론을 제창하려면 먼저 지금까지 축적된 학문적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 라틴어는 CANONICUS ASTRONOMUS INCOMPARABIIS라고 지칭하는데 여기서 CANONICUS의 뜻이 의외이다. 두 가지 뜻을 지닌 CANONICUS는 '교회와 관련된 것', 즉, '교회적' 그리고 '표준적' 혹은 '모범적'임을 의미한다. 당시 이단아나 다름없는 가톨릭교회와 입장이 반대였던 코페르니쿠스가 어떻게 표준적이고 모범적인 천문학자로 칭송받았던 것일까? 사실 그는 프롤레마이오스 천문학에 대해 가장 탁월했던 천문학자였다고 한다. 즉, 그 천문학을 통달한 동시에 그 이상을 넘었으니 가히 최고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결국 진부한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많이 사용되어 더이상 흥미롭지 않거나 효과적이지 않은, 또는 본래 의미를 상실한 개념이나 관용구'를 뜻하는 '클리셰'와 '사물의 처리에 정하여져 있는 일정한 방식'을 뜻하는 '정석'을 혼동하곤 한다. 익숙한 소재와 플롯, 캐릭터라도 작가가 요령껏 사용하면 정석에 충실한 매력적인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재미도, 감동도 없는 클리셰가 된다. 그러니 아래 글에서 '클리셰를 잘 다룬다'는 말은 곧 '정석의 힘을 끌어낸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다만 클리셰에서 '의미'의 기준은 작품과의 관련성(= 표현의 의도에 담긴 진정성)이지, 그것의 현실성(개연성)이나 행위 동기의 합리성이 아니다. 예를 들어 '애니에서 여자들끼리 가슴 크기 비교하기'는 없어도 무방한 내용이니 클리셰이다. 이때 실제로 그런 일이 흔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반면 '타이거 앤 버니'의 캐릭터와 연출, 플롯은 진부하지만 따라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정석적이다. '살을 빼려면 적당히 먹고 꾸준히 운동해라'는 말이 당연하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과 비슷한 맥락인데, 이것이 클리셰가 아닌 이유는 '정석적인 전개를 잘 따르면서도, 이를 이 작품만이 가진 특이한 소재 안에 녹여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클리셰를 뛰어넘은 신선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다루는 장르의 클리셰를 완벽하게 구사해야 한다. 피카소의 말처럼, '규칙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먼저 규칙을 완벽하게 익혀야 하는 것'이다. '나는 새로운 것을 만들겠다'며 자신만만하게 시작하는 젊은 예술가들이 실패하고 마는, 또한 상업예술을 만만하게 보고 뛰어드는 순수 예술가들이 자존심을 구기는 큰 이유 중의 하나이다. 현실에서는 클리셰를 뛰어넘기는 커녕, 단지 클리셰를 잘 다루는 작품조차 제대로 만들기 어렵기 때문.


나무위키, '클리셰 파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