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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좀비가 있어도 여고생은 잘 살고 있어요♥ - 막장 속의 진지함

‘나’는 힘만 세고 무식한 체육부장 윤아를 친구 삼아 좀비 세상에서 목숨만 구제했다! 이 살벌한 상황에서 윤아는 수현 오빠 몸땡이를 get했으나 급처분하게 되어버리고 옆학교 진수 오빠를 찾으러 가게 된다. 그리고 도중에 나타난 태희는 제멋대로 로딩중!! 우리는 과연 이 광활한 좀비의 사막을 넘어 진수 오빠를 득템할 수 있을 것인가?!

작품 소개, 리디북스

 

전혜진 작가의 <순정만화에서 SF의 계보를 찾다>를 읽고 알게 된 만화. 좀비로 가득한 세상에서 커터칼로 좀비 목을 따면서 좋아하는 오빠를 찾아 떠난다는 저세상 스토리지만, 완결까지 본 감상은 나쁘지 않았다. 예쁜 그림체와 입체적인 캐릭터, 진지하면서도 경쾌한 분위기, 시원시원한 이야기 전개도 좋았지만, 좀비물의 코드를 담습하면서도 그것을 비틀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기존의 좀비물이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어두운 면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작품은 그 안에서 힘차게 살아가는 여고생들을 통해 사랑과 우정이라는 보다 친숙한 주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조기 완결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분량이 짧고 결말이 어설픈데다 잦은 반전으로 몰입이 깨지는 것이 흠이지만, 작가의 첫 연재 만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준수한 완성도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위 책의 저자는 이 만화를 두고 '좋아하는 오빠를 구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갈 뿐이고, 그 과정에서 친구들이 잔뜩 생기는 이야기. 이 얼마나 적나라한 욕망의 결정체인가.'라고 말했는데, 남성향 만화 중에서는 <결혼반지 이야기>같은 만화가 그런 느낌이다.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세상을 구하고, 그 과정에서 아내가 잔뜩 생기는 이야기'니까. 내가 순정만화를 보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데, 일본 서브컬처는 대부분 남성향이라 관심이 없으면 여성의 시각을 체험할 기회가 드물기 때문이다. 박현우 씨의 글을 인용하며 이 리뷰를 마친다.

 

다만, 나는 제작자들이 여성 시장을 고려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자들도 야한 거 좋아한다. 내 주위에 얼마나 야한 여자가 많은데? 남친과의 성생활에 대해 얼마나 불만이 많은데? 그들에게도 판타지가 필요하다. 그들에게도 딸감이 필요하다.

브런치, '한국 에로 영화 시장은 여성 시장을 놓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