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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반도서

<나를 보내지 마> - 반항할 수 없는 아이의 삶

 

※ 스포일러 주의 : 스포 없는 리뷰로는 아래 글을 추천.

 

1657. 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 마』 | 민음사

1657. 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 마』  [9.5/10] . 인간의 삶과 죽음, 그 중간 어딘가를 부유하며 우리의 내면을 보자. 과연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가. 인간은 무엇이고 어떻게 규정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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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5 작성.

 

목차

 



1. 줄거리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나를 보내지 마>는 1990년대 후반 영국, 평화로워 보이면서도 외부와의 접촉이 일절 차단된 기숙학교 ‘헤일셤’을 졸업한 캐시가 간병사로 일하며 학창 시절을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캐시의 일은 장기 이식 수술을 마친 환자들이 마음의 안정을 찾게 돕는 것인데, 이상하게도 작중에 나오는 그녀의 헤일셤 동기들은 모두 간병사나 장기 기증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 이유는 나중에 밝혀지는데, 캐시를 비롯하여 헤일셤을 졸업한 이들은 전부 이식용 장기를 얻기 위해 만들어진 클론이었던 것이다. 이 부분에서 독자는 이 작품이 대체역사 소설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되는데, 작중에서는 의학의 발전으로 인간을 복제하고 암 환자들에게 클론의 장기를 이식하는 일이 가능해지면서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급감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헤일셤의 교사들이 이 사실을 자신들에게 숨겨왔다는 것을 알게 된 캐시는 모교의 교장이었던 에밀리 선생에게 해명을 요구하지만, 그녀는 헤일셤이 다른 ‘농장’들과는 달리 클론을 인격체로 대우했다고 주장하며 ‘너희 운명은 너희가 개척해야 한다’는 말을 내뱉는다. 결국 캐시는 두 소꿉친구를 모두 장기 이식 수술로 떠나 보내게 되고, 그녀 또한 그들의 전철을 밟을 것을 암시하는 결말로 끝이 난다.

 

2. 시사점

 

<나를 보내지 마>에서 세뇌 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와 부당한 대우에 시달리는 클론들의 존재는 사회적 약자와 타자에 대한 은유로 볼 수 있으며, 그들이 장기를 이식하고 죽는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은 우리에게 자유 의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클론은 영혼이 없다고 단정 짓고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사람들의 행태는 인간 사회의 도덕적 해이를 보여주는 동시에, ‘클론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주제를 독자에게 상기시킨다.

 

2.1 약자와 타자에 대한 은유

 

먼저 클론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은유로 보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사회적 약자는 ‘정치, 경제, 문화 면에서 사회의 주류 구성원들에게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차별을 받거나 받는다고 느끼는 집단’인데, 작중에서는 클론에게 영혼이 없다는 사회 통념 때문에 클론들은 직업과 장기기증 여부를 선택하는 문제에 있어 차별을 받는다. 또 클론은 사회에서 수적으로 열세이며,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줄 부모도, 선생님도, 정치인도, 언론 매체도 없기에 클론의 사회적 지위는 매우 낮다. 그리고 클론을 타자에 대한 은유로 보는 근거는 작중에서 인간이 클론을 보는 시선의 온도인데, 헤일셤의 학생들에게 ‘마담’이라고 불리던 마리클로드가 ‘우발적으로 신체가 닿을까 두려워’ 루스 무리의 접근에 굳어버렸던 것이나 케퍼스가 클론들을 거북하게 여겼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차별은 클론에 대한 그 둘의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자의적인 기준으로 클론을 인간의 범주에서 제외하고 클론들을 차별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유래하는데, 여기서 인간과 클론을 구분하기 위해 인간/비인간, 우리/너희의 이분법적 도식이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클론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차별이 존재하는데, 3부 23장에서 토미가 캐시에게 간병사를 바꾸고 싶다고 말하면서 “너도 기증자가 되면 너도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라고 한 것이 그 예이다.

 

2.2 클론의 자유 의지

 

다음으로 자유 의지에 대해 적어보겠다. 자유 의지의 사전적 의미는 ‘외적인 제약이나 구속을 받지 않은 채 정신적으로 누리는 자유’인데, 흔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와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캐시는 얼핏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처럼 보인다. 간병인으로서 맡을 환자를 선택할 수 있고, 운전도 할 수 있으며, 친구를 만나러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시에게 행동의 자유가 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소설의 도입부에서 캐시는 독백으로 올해 말에 간병사를 그만둔다고 하면서 ‘은퇴하기 좋은 때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이것은 그녀가 스스로 내린 결정이 아닌 ‘그들’이 결정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은퇴를 받아들인 캐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인생 2막이 아니라 잇따른 장기 적출 수술이며, 이는 원작 소설을 각색한 영화 <네버 렛 미 고>의 결말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2.3 사회의 도덕적 해이

 

그리고 도덕적 해이를 이야기할 차례이다. 도덕적 해이란 법과 제도적 허점을 이용하여 자기 책임을 소홀히 하거나 집단적인 이기주의를 나타내는 상태나 행위인데, 전자의 예는 작중에서 클론을 싫어하는 코티지의 집주인인 케퍼스가 난방용 가스를 나눠주지 않아 주인공과 다른 클론들이 추위에 떨었던 것, 후자는 영국 사회가 장기 이식의 이점 때문에 클론들이 받는 비인간적인 대우를 묵인하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같은 도덕적 해이라도 영국 사회의 과실이 더 큰데, 이를 설명하려면 먼저 칸트 철학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칸트 철학의 핵심은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인데, 이를 가장 잘 나타내는 개념이 바로 정언 명령과 가언 명령이다. 정언 명령이란 행위의 결과에 구애되지 않고 행위 그 자체가 선()이기 때문에 따라야 하는 도덕적 명령으로, 인간을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는 것이 바로 정언 명령이다. 반대로 가언 명령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내리는 조건부 명령으로, 그 목적을 승인하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 보편타당한 개념이 아니다.

 

도덕적 해이 이야기로 돌아가서, 케퍼스의 개인적 이기주의보다 영국 사회의 집단적 이기주의가 더 나쁜 이유는 영국이 클론을 사회 구성원들의 수명 연장을 위해 소모품처럼 활용하면서, ‘장기 이식을 받기 위해 다른 인간을 죽이면 안 된다는 정언 명령을 인간이 아닌 클론이라면 장기를 적출해도 된다는 가언 명령으로 비틀어 해석했기 때문이다.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사실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이기도 한데, 다른 리뷰를 인용하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우리는 인간이 만들어 낸 존재에 관한 작품을 무수히 봐왔다. 그 작품들에서 그들은 여지없이 다양한 형태의 존재 부정, 현실 부정을 통해 일종의 혁명을 일으키고자 한다. <바이센테니얼 맨>에서는 인간이 되려 하고, <아일랜드>에서는 탈출을 하려 하는 게 그 대표적 모양새다.

하지만, 그런 존재 부각의 모양새는 오히려 그들의 존재 주체의 측면에 소홀하기 쉽다. 그들은 거대 담론과 논쟁의 소모품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들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반면, 가즈오 이시구로가 그려내는 <나를 보내지 마> 속 클론들의 삶은 다른 무엇의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출처 : https://singenv.tistory.com/996 (압도적인 심리묘사와 여운... 특별한 소설 <나를 보내지 마>)

 

2.4 인간의 조건

 

마지막으로 이 작품이 던지는 클론에게도 인간의 영혼이 있을까는 질문은 SF에 어울리지 않는 진부한 화제였다고 본다. 작가는 클론의 인간성을 보여주기 위해 영혼의 존재를 언급하지만, 인간의 복제인 클론은 당연히 인간이며 이는 영혼의 개념을 도입하지 않고도 입증할 수 있다. 생물학적 종()의 개념을 빌어 생식 능력이 없는 클론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에 속하지 않는다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후손을 남길 수 없다는 점만 빼면 근원자와 유전적으로 완전히 일치하는 클론이 인간이 아니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한 인간과 클론 중 어느 쪽도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기에, 클론이라도 영혼이 있다면 인간과 같다는 논리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SF 작가이자 평론가인 듀나도 영혼의 존재 여부에 관한 논의가 클론들의 인권 신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는데, 그 근거로 세상에는 클론을 보통 인간과 차별할 근거가 없으며 과학과 법률은 인간을 정의하기 위해 영혼의 개념을 빌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들었다. 나도 듀나의 주장에는 대체로 동의하지만 종교 등 개인적인 신념 때문에 클론을 차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하지만 클론의 존재가 영혼이나 신의 섭리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일란성 쌍둥이를 예로 든 것은 적절했다고 본다.

 

3. 총평

 

<나를 보내지 마>클론도 인간이다SF다운 주제를 다룬 작품이지만, 클론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과학적, 법적 쟁점을 무시했기에 SF 소설로서는 완성도가 낮다. 하지만 클론들을 동정의 대상이나 저항적 주체로 조명하는 대신 캐시, 루스, 토미 이 세 사람의 감정과 욕망을 차분한 필치로 묘사하여 클론이 인간인 이유를 문학만이 가능한 방식으로 보여 주었기에, 성장 소설로서의 완성도는 노벨문학상의 이름에 걸맞는 수준이었다고 본다.

 

참고한 리뷰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 "복제 인간이 그리는 장기 기증의 미래"

복제 인간들의 운명, 장기기증에 관하여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복제되어 양육되는 존재들이 있다. 그들은 모습부터 사고방식과 행동방식까지 진짜 인

aboutthefree.tistory.com

 

 

<나를 보내지 마>의 작중 인물들에게 <나는 당신에게 그저>를 들려주고 싶다.

너무 슬프면 눈물도 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를 읽고 가슴이 먹먹하게 아파왔다. 차라리 온몸을 쥐어 뜯고 발버둥치며 울어버렸다면 이렇게 가슴 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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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심리묘사와 여운... 특별한 소설 <나를 보내지 마>

[지나간 책 다시읽기]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 많은 소설을 읽다 보면, '이건 진짜다' 하고 감탄하고 가슴 속에 깊숙이 저장시키는 작품이 있다. 그런 소설은 언젠가 반드시 다시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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