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만화

<목소리의 형태> 1권을 읽고

1. 이시다는 나쁜 아이가 아니다. 본성은 착하다. 어른들처럼 나이를 내세워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 나이 또래의 여자애들처럼 영악한 처세술로 선생님의 눈을 속이지도 않는다. 아직 나이가 어려 생각이 여물지 않았는데도 본심을 숨기지 않으니 반에서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반 친구들이라고 이시다와 생각이 달랐을까? 다만 그들은 그것을 입 밖에 내지 않았을 뿐이다.

2. 키타 선생은 니시미야의 보호자를 자처할 자격이 없다. 거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합창 콩쿠르 건이다. 청각 장애인을 합창단에 넣다니, 제정신인가? 남자를 수녀원에 보내는 격이다. 자기 목소리가 어떤지도, 다른 사람의 노래가 어떤지도 모르는 인간이 어떻게 합창을 한다는 것일까? 두 번째로, 본인도 못하는 수화를 자신이 가르쳐야 할 학생들에게 먼저 배우라고 하는 게 말이 되나? 이건 그 반 담임 선생도 지적한 부분이다. 애초에 왜 그 아이들이 수화까지 배워가며 니시미야와 대화해야 할까? 그냥 교류를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우에노란 아이도 그 점을 지적한다. 그녀는 필담으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한데 왜 수화가 필요한지 묻지만, 이 지당한 질문에 키타 선생은 이렇게 답한다. '그냥 네가 배우기 귀찮은 것이 아니냐'고. 이게 교사가 할 소리인가? 다 큰 어른들도 장애인을 제대로 배려해주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인데, 그녀는 자신의 학생들에게 무엇을 기대한 걸까? 세 번째로, 대체 무슨 생각으로 니시미야의 보호자 역할을 사하라에게 맡긴 걸까? 그녀 혼자만 니시미야를 돕겠다고 나섰으니, 다른 아이들에게 그녀는 눈엣가시처럼 보였을 것이다. 뒷일은 생각도 안 하고 덜컥 사하라를 치켜세우고 가버리니, 그녀가 여자애들의 그룹에서 소외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3. 이 만화에 나오는 선생이란 작자들은 왜 이렇게 뻔뻔하고 독선적일까? 이시다를 무책임하게 반의 분위기를 흐리는 문제아 취급하는 담임도, 니시미야가 필담을 불편해 하는지 물어본 적도 없으면서 멋대로 그렇게 단정짓는 키타 선생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시다는 그저 또래 아이들보다 동심이 풍부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며, 마음을 전하는 데 서투른 것 뿐이다. 또 니시미야는 어떤가? 키타 선생이 그녀에게 도우미를 붙여주려 한 것 자체는 잘못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역할을 당번으로 만들지 않고 사하라가 전담하게 한 것은 실수였다. 6학년 2반 여학생들이 그녀를 따돌린 것은 단지 키타 선생이 그녀를 편애한다고 생각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하라가 홀로 손을 들었을 때 그녀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한순간에 죄인이 된 기분이었겠지. 그 와중에 키타 선생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사하라를 치켜세우니, 얼마나 눈꼴시게 보였겠는가.

4. 내가 <목소리의 형태>에서 감탄했던 부분은 두 가지다. 하나는 청각 장애와 집단 따돌림(이지메)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정직하고 생생하게 풀어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연성이 워낙 높은 수준이라 내가 예측한 전개가 그대로 작품에 나왔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사하라가 왕따 당한 건이 이 모두를 아우르는 사례인데, 만화를 보면서 떠올린 최악의 결말 - 그녀가 니시미야를 위해 나선 것을 후회하는 상황 - 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는 나도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