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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애니 프사는 왜 쓸까요?'에 대한 우문현답

들어가며


여러분은 애니메이션 캐릭터 사진을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의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하는 일명 '애니 프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기 최애캐를 남들에게 소개할 수 있어 뿌듯한 분도, 관심 없으신 분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세간에는 애니 프사를 쓰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만연해 있는데, 나무위키에도 실린 아래 사진이 단적인 예입니다.


그러던 차에 미국의 지식인에 해당하는 사이트인 Quora에 괜찮은 답변이 있어서 번역해 봤는데, 이 글이 애니 프사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전체 문답을 볼 수 있고, 인용한 답변의 출처는 따로 적었습니다.)


Q. 요즘 SNS에 애니 프사를 쓰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을까요? 애니가 인기가 많은 것도 아닌데...

긍정 측


A1. 사람들은 왜 인기가 많은 것도 아니면서 자기 얼굴 사진을 프사로 할까? 똑같은 질문이야. 그게 인기가 많든 적든 간에 사람들이 '왜' 그런 프사를 쓰는지 질문하는 것은 바보짓이지.

그리고 애니가 인기가 없다는 건 오해야. 이 글들을 좀 보라고.

(Eula 님, 조회수 2천, 좋아요 5개)


A2. 애니의 인기가 아주 없는 건 아니야. 유럽이나 미국의 지인들 중에 특정 애니의 광팬인 사람들이 꽤 있거든. 물론 내 조국인 인도처럼 애니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곳도 있어. (대부분 '데스노트'로) 일단 입덕을 하게 되면 같이 애니 이야기를 할 또래 친구를 찾게 되는데, 비유하자면 이런 느낌이야.


하지만 일반인들은 애니를 데스노트밖에 (아니면 드래곤볼까지) 모르다 보니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야. 여기까지 오면 슬슬 소외감이 들기 때문에 앞으로 애니는 그만 보자고 다짐하게 되지.

그래도 진짜 팬이라면 이미 애니를 끊을 수가 없고, 끊지도 않을 테니 우리들처럼 외로운 늑대가 되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동지를 찾게 되는 거야. 그런 식으로 유명한 애니를 종류별로 몇 개씩 섭렵하고 나면, 우리처럼 오타쿠를 자칭하게 되지.


그 과정에서 애니 캐릭터는 티셔츠, 닉네임, 프사, 바탕화면 등 어떤 식으로든 우리 삶의 일부가 되기 마련이야.

(D Arpit 님, 조회수 1만, 좋아요 17개)


부정 측



A3. 외모에 자신이 없으니까 애니 프사로 자위하는 거지.

(익명, 조회수 4천, 좋아요 30개)

A4. 우리처럼 애니 프사를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진에 찍힌 자신의 모습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Hansel Himawan 님, 조회수 3천 이상, 좋아요 10개)

@Hansel 네가 누구이고 무엇이 좋은지 알려주고 싶지 않다면 SNS는 왜 하는데? 사회 공포증이라도 있어?

(Joris Harms 님, 좋아요 2개)

@Joris SNS에 굳이 얼굴을 공개할 필요는 없잖아.

(Max Gamez 님, 좋아요 3개)

@Max 네가 누군지 궁금한 이들에게 셀카 대신에 나루토 사진을 보여주는 게 맞는 일이라고 생각해?

@Joris 무슨 데이트 앱/사이트도 아니고, 사람들이 내가 누군지 궁금해 하겠어?

(좋아요 1개)


마치며


이렇게 애니 프사에 대한 해외 커뮤니티의 논의를 짚어봤습니다. 조사를 하면서 아쉽게 다가온 점은, 질문의 의도도 애니 프사를 쓰는 이들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고, 대부분의 답변도 그들에 대한 억측에 불과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우문현답이라고 할 만큼 유익한 답변도 일부 있었지만, 노골적인 편견과 혐오가 드러난 글들이 많은 지지를 받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는 것은 그들의 탓도, 오타쿠들의 탓도 아닙니다. 자신과는 다른 이들을 미워하고 공격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에, 설령 여기서 언급된 대상이 오타쿠가 아니라 성소수자, 장애인, 외국인 등의 사회적 약자였더라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 . 그들이 내게 왔을 때 . . .
그때는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 줄 이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 마틴 뉘묄러


그렇다면 오타쿠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인 인식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편견과 혐오는 무지를 먹고 자라므로, 오타쿠와 일반인의 교류가 이어지다 보면 서로에 대한 인식도 좋아질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소설의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마칩니다.

외국인들과의 접촉이 허용된다면, 그들도 비슷한 인간이고, 그들에 대해 들어온 이야기의 대부분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가 살고 있는 폐쇄된 사회는 붕괴될 것이며, 사기 진작의 근간이 되던 공포와 증오, 독선은 사라질 것이다.

<1984>, 조지 오웰